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태조의 추존된(왕으로 받들어 모시는) 조상 네 분과 나라에 충성한 공신(功臣)들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이다. 종묘의 ‘종(宗)’은 마루, 근본, 으뜸을 뜻하고, ‘묘(廟)‘는 위패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 종묘는 조선 태조 3년(139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변해 창경원이 되고, 일제강점기때 조선 총독부가 세워져 경복궁을 헤치기도 하였다. 덕수궁도 일제가 부지를 파는 바람에 원래 2000평에 달했던 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은 범위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비록 옛 모습 그대로 궁궐의 웅장함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조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하였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또 남쪽에는 국가의 사당인 종묘가 북쪽에는 왕실의 정원인 후원이 붙어 있어서 조선 왕조 최대의 공간을 형성했다.
그러나 옹조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여러 차례의 화제로 재건을 거치면서 많은 변형을 가져왔고 1991년
답사와 많은 토론으로 문화재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재 문제에 원칙적이며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전초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Ⅱ. 본론
1.답사지 지도
2. 답사 일정
<5월 5일 화요일 답사>
10시 - 서울역 집합
10시 15분 - 서울역에서 버스타고 이동
10시 20분 -
Ⅰ. 답사 장소 선정 이유
답사 장소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조원들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우리나라 4대 궁궐의 이름들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였다.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조선의 고풍을 느낄 수 있는 궁궐들이 서울 시내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답사지를 궁궐로 정하게 된
Ⅰ. 종묘(宗廟)
종묘는 사적 제 125호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신궁(神宮)이며,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태조(太祖)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그 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고, 개성에서 태조의 4대
창경궁로·대학로와도 연결 교차된다. 철도로는 지하철 1호선의 종각역·종로3가(탑골공원)역·종로5가역·동대문역이 있고 종로3가역에서 1·3호선으로, 동대문 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다. 보신각 외에 종묘(宗廟:사적 125), 탑골공원, 동대문(보물 1호) 등 유서 깊은 사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밖
서론
주제 선정 동기 및 배경
1392년, 조선왕조의 성립은 한국사에 큰 분수령을 이루었다. 새 왕조를 세운 주역들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제시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자비와 중생구제라는 불교의 세계관을 벗어나 인간중심적인 유교의 현실관에 충실하였고, 개경에서 한양
대해 소개할 수 있는 유적지를 하나쯤은 만들어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답사지로 정하게 되었다. 물론 궁궐로 정할 경우에 궁궐은 건물위주로 되어있는 곳이고 당대의 일상적인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서 자칫 감상이 왜곡되거나 한쪽에 치우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창경궁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것 치고 내가 창경궁을 최종 답사지로 결정한 이유는 의외로 너무나 명료했다. 다른 어떤 궁궐보다도 창경궁이랑 친숙하지만 역시 창경궁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학교와